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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전문 “이글루스”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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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보금자리, 이것저것 어색한 것이 많으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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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루스는 블로그전문을 지향합니다.
2004년, 첫 발을 내디딘 이글루스는 국내 최초 트래백 을 도입하여 블로그전문 서비스로 입지를 다졌습니다. 관심사를 공유할 수 있는 ‘ 밸리’와 ‘마이’, 문화체험의 새로운 경험 ‘렛츠리뷰’, 국내 최고 메신저 네이트온 연동으로 더욱 새로운 블로깅, 독보적인 블로거가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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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일촌, 친구, 이웃 등 오프라인 인맥 위주의 ‘친구맺기’ 기능이 필요하시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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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별 공개/비공개 기능은 현재 마련되어 있지 않으나 추후 필요성을 검토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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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ldemblemata | 2009/02/19 15:40

공지사항

이런 저런 이유로 인하여 블로그를 옮기게 되었습니다.
http://blog.naver.com/emblemata 로 이사합니다.
이 블로그의 포스팅은 일단 그대로 놓아둡니다만, 조금씩 새 블로그로 이전될 계획입니다.
이전이 완료되는 포스팅들은 삭제되오니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by oldemblemata | 2006/10/06 13:29 | Anything Else | 트랙백 | 덧글(0)

Paul Godwin (Pinchas Goldfein) : most forgotten violinist

Paul Godwin만큼 특이한 경력을 가진 바이올리니스트는 달리 찾아보기 어려울 것입니다. 2개의 세계대전을 유대인으로서 경험하였다는 점만으로도 그의 생애가 순탄한 것이 아님을 쉽게 짐작할 수 있을 듯 합니다. 한편 성공적인 경력을 가졌음에도 Godwin 개인에 대해서 알려진 것은 매우 적다고 합니다.
Godwin은 1902년 3월 28일 폴란드의 소스노빅(Sosnowiec, 후일 독일에 귀속되었을 때는 Sosnowitz)에서 출생하였고, 본명은 Pinchas Goldfein입니다. 바르사바에서 Hermann Kaplan에게, 그 뒤 부다페스트에서 Jenoe Hubay(!)에게 바이올린을 배웠습니다.
Godwin은 동시에 1922년 베를린에서 자신의 오케스트라를 조직하여 활발한 녹음활동을 합니다. 최근의 연구에 의하면 1923년부터 1933년까지 사이에 Godwin은 2,500곡 가량이 녹음된 220장의 SP를 9백만장 가량 판매하였다고 합니다. 당시의 대부분의 가수들은 그의 반주로 곡을 취입하였고, 80편 이상의 영화음악을 녹음하기도 합니다. 한편 그 중간에 "Paul Godwin-Trio"나 "Paul Godwin Quartet"이라는 이름으로 클래식 녹음을 하기도 합니다. 그의 오케스트라는 너무나 다양한 곡들을 녹음하였기 때문에 그때 그때 맞추어서 "Tanz-Orchester Godwin", "Paul Godwin's Jazz Symphoniker", "Paul Godwin-Ensemble", "Paul Godwin & sein Weekend-Orchester"라는 이름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Godwin의 이와 같은 화려한 경력은 나치의 집권과 더불어 종료됩니다. 1933년 2월을 마지막으로 유태계인 Godwin은 베를린을 떠나 네덜란드에 정착해서 새로운 오케스트라를 만듭니다. 그러나 2차 대전중 네덜란드가 나치에 의하여 점령된 뒤 Godwin은 암스테르담의 게토에 수용되어 연주자 및 관람자가 모두 유태인으로 제한된 유태인 극장("Joodsche Schouwburg")과 유태인 수용자 오케스트라(Jewish Entertainment Orchestra)에서 연주합니다. 그가 극적으로 게토에서 생존한 경위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2차 대전후에 Godwin은 독일이 아니라 네덜란드에 정착합니다. 그리고 1947년부터 연주활동을 재개하는데, 클래식 연주자로서 다시 복귀하게 됩니다. 1960년에는 네덜란드 국적을 취득합니다. 1982년 12월 9일 사망합니다.
그의 SP시대의 녹음은 수도 없이 남아 있다고 하나(그의 별명은 디스크 백만장자였다고 합니다) LP 시대의 녹음은 많지 않습니다. 그 전성기가 1차대전 직후였던, 그리고 그 전성기의 기록마저도 나치에 의하여 대부분이 파괴되거나 재편집된 Godwin으로서는 당연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현재 구할 수 있는 것은 Alma Musica의 일원으로 서 한 몇개의 녹음과, 말년에 네덜란드의 마이너 레이블인 Vara Gram(거의 private에 가깝습니다만)에서 남긴 몇개의 녹음이 전부입니다.
Ducretet Tompson LPG8218
Alma Musica의 일원으로 한 음악의 헌정 녹음

6818 181/182
Alma Musica의 Private 발매된 푸가의 기법 녹음. 1983년 발매된 것으로서 Godwin의 사망 얼마전의 녹음인 듯 합니다.

Vara Gram 0018

Vara Gram 0024

Vara Gram 0030

Vara Gram 0032

by oldemblemata | 2006/04/02 16:35 | 트랙백 | 덧글(0)

Salvatore Accardo

1941년 10월 26일생인 Accardo의 출생지에 대해서는 약간의 혼란이 있습니다. 나폴리 태생이라는 말도 있지만, 북부 이탈리아 태생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Accardo가 나폴리에서 성장하면서, 남부 이탈리아의 기질을 가졌다는 점에 대해서는 이론이 없습니다. 축구광으로서 격렬한 운동을 좋아한다고 합니다. 태클 잘못 당해서 손가락에 부상이라도 입으면 하는 생각이 절로 납니다.
아카르도는 좀 이른 시기의 그리고 동시대의 다른 이탈리아 바이올리니스트에 흔히 비견됩니다. 그리고 아카르도가 널리 알려진 것은 메이저 레이블에서 녹음을 할 수 있었다는 이점에 기인한 것이 크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이러한 지적은 사실이지만, 아카르도의 실력을 폄하하는 이야기가 되서는 안되리라도 생각합니다.
아카르도는 초기 이탈리아 데뷔 시절에 Bach의 파르티타 2번을 녹음 하였고, 그 뒤 필립스에서 무반주 바이올린 전곡을 녹음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그리 인기가 없지만, 외국에서는 매우 호평을 받고 있습니다.
RCA MS 20245



Philips 6703 076
한편 아카르도 만큼 이런 저런 레이블에서 많은 녹음을 남긴 바이올리니스트도 흔하지 않습니다. 아마 세링 정도가 비견될 수 있을 듯 합니다만. 초기에 이탈리아 RCA 로칼, Cetra에서 녹음을 남겼고, 그 뒤 프랑스의 Vega, Pretoria, Roxan 등의 마이너 레이블에서, Philips와 EMI, 그리고 말년에는 다시 이탈리아의 마이너 레이블인 Dynamic에서 녹음을 남겼습니다. 한편 Saga에서의 발매는 오리지널인지가 다소 불명입니다.아래는 각 레이블의 대표적인 레이블입니다(빠진 레이블도 많습니다만).
Vega 30 MT 10144
Accardo, Jean Fournier, Merckel의 소품들입니다
Vega C 30 S 330
Pretoria 녹음의 재발매입니다.
Philips 6769 024
로시니의 현을 위한 소나타 녹음. 오디오 파일로 유명합니다. 소리가 튀어나오는 듯합니다.
EMI 067 EL 27 0186 1
소품집입니다.
Dynamic DS 4001
역시 오디오 파일로 유명한 파가니니의 변주곡 녹음
PDU CM 60100
이탈리아의 마이너 레이블. 아르헤리치와의 콤비입니다.

by oldemblemata | 2006/03/26 14:21 | 트랙백 | 덧글(0)

Kuijken family

제가 간 작년 최고의 공연은 사발의 영산아트홀에서의 독주와 역시 영산아트홀에서의 the Kuijkens의 음악의 헌정입니다. 가장 난해한 공연은 빌란트 무반주 독주회라고 할 수 있겠네요.
사인회에 몇 장의 옛날 판들을 들고 갔는데 예상외로 재미있어 해서 놀랐습니다. 골동품 수집가라면서 코넨씨가 즐거워하더군요. 30년 이전에 출반된 자신의 녹음을 LP로 보는 것이 재미있었나 봅니다.
연주회에서 사인을 받은 판들입니다.
Philips 6575 042
이들의 음악의 헌정의 첫번째 녹음입니다. 마리 레온하르트와 구스타프 레온하르트가 같이 참가했습니다.


LMV 30/008
풍요로운 과거라는 제목의 이 LP는 1970년의 벨기에 라디오 및 텔레비전 실황을 모아서 발매한 판입니다. A면은 16-17세기 저지대의 오르간 음악, B면은 Alarius Ensemble에 의한 Carolus Hacquart와 Giovanni de Macque의 곡이 녹음되어 있습니다.

사인은 알라리우스 앙상블의 사진이 있는 안쪽에 받았습니다. 빌란트 쿠이켄이 사인을 두번했고, 아래가 지그스발트, 마지막이 코넨의 사인입니다.

BAM LD 095
알라리우스 앙상블의 BAM에서 초기녹음입니다.

뒷면의 사인

한편 이상하게 바르톨드가 다른 형제들과 녹음을 같이 한 것은 구하기 어렵더군요. 자신의 녹음이 아닌 판에는 사인하지 않는 고집도 있고. 집에 와서 뒤지니까 이들이 같이 한 녹음은 아래 한 개 밖에 찾지 못했습니다. 만약 이들이 다시 온다면 여기에 사인을 받을 계획입니다.
1973년 4월 1일 일요일 마태 수난곡 실황녹음입니다. 연주는 전곡이 된 듯 한데, 녹음은 한장 발췌만 있습니다. Johan van der Meer의 지휘하에 Leonhardt Consort, Alarius Ensemble, Musica da Camera라는 당시의 일급의 네덜란드 음악가들이 반주에 참여했습니다. 쿠이켄 형제 세 명에, - 단 표기는 Bart, Sigiswald, Wieland입니다 - 쿠이켄이라는 성을 가진 사람이 Marleen 1명 더 있습니다. 그리고 ter Linden, Wilbert Hazelzet, Dombrecht, Haynes, van Dael, Asperen, Koopman 등등의 익숙한 이름들이 많이 보입니다. 알토는 Jacobs, 예수는 Egmond, 복음사가는 Marius van Altena(이 사람 이름은 잘 모르겠군요) 등등의 구성입니다.


by oldemblemata | 2006/01/01 21:39 | Rare or Not so Rare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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